대회대회를 신청하게 된 계기부터 완주하기까지의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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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화쌤 작성일16-04-27 07:33 조회3,8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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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인생의 길을 찾다.
[1]
자전거를 처음 만났을 때는 6살쯔음이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유치원이 1km정도 거리였는데 부모님은 내가 유치원 가는 것을 챙겨주실 수 없었고, 유치원 버스도 나 하나를 태우러 험하고 더러워지는 외진 곳을 들어오기 꺼려했다. 그렇게 나는 유치원 때부터 자전거로 유치원을 왔다 갔다 하였다.
[2]
12년간 학교에서도 자전거는 한 몸이었다.
1,2년에 한 번의.. 잦은 이사 속에서 나는 친구들보다 자전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되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추억들은 대부분 자전거와 함께였다.
[3]
자전거와 젊은 내 체력 단 두 가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나는 머리가 커갈수록 더 빨라지기를 원했고, 더 넓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빠른 시간에 완주를 한다고 한들, 젊은 나의 마음은 공허하였다.
무엇이 충족되지 못해서일까, 국내로는, 이 정도 속도로는 만족하지 못 하는 걸까,
나만의 정답은 적절한 여유였다. 앞에 보이는 라이더, 빠르게 달리는 차 속에 차선 하나를 떡 하니 잡아 라이딩을 하고 신호를 내 방식대로 가로지르는 내 모습은
마치 어른들이 잘나가는 외제차로도 안전하게 6,70km로 달리고 있는데,
나는 국산 경차로 무모하게 110,120km로 주위에 있는 차도 보는 사람도 위협하고 있는 듯.
패기넘치고 도전적인 젊음이보다 무모하고 위험한 실속이 적은 시간들이었었다.
[4]
이렇게 무모한 내가 다행히도 아직 무사고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사고가 나보지 못한 겁 없는 젊음이 과격함을 불러 한 번의 큰 사고로 이어질 수 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헬멧과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장비들을 구입하게 되었다. 예전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장비가 많아져 조금은 귀찮아졌지만 잠시 보는 라이더들과 교감하며 주변을 보게 되었다.
주변을 보면서 한 번도 남을 인정하지 못했던 내가 느낀 점은 베테랑들에 대한 존경이였다.
예전의 내가 10이라는 속도로 달리며 주변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면
베테랑들은 7이라는 속도를 달리면서 주변까지 다 즐기고 왔다.
나는 주변을 즐기며 자전거를 타보니 3,4정도의 속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최고다 생각했던 예전의 나는 숙달된 조교 앞에 겁없이 방아쇠만 당길 줄 아는 고작 훈련병이었을 뿐이었다.
[5]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나는 로드, MTB를 타며 방방곳곳을 돌아다녔고, 이번에는 미니벨로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중 때마침 눈에 들어온 미니벨로는 스트라이다,
스트라이다가 나온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관심이 없어서인지 보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지난 3월에 입문하게 되었다. 마치 이전과의 자전거와는 다른 느낌과 투박한 느낌, 마치 예전 중학생때 동네자전거로 5km가량을 업힐하며 등교했었던 내 모습이 생각났었다. 그 때에는 정말 열심히 달렸는데.. 지금은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6]
직장이 있는 곳이 경사가 심한 곳(10도가량)이라 3km가량을 스트라이다로 업힐을 해보았는데, 체력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문제는 내 정신상태가 이제는 더 이상 못 해. 여기까지야. 라는 생각이 나를 자극시켰고, 스트라이다 카페에 있는 미시령, 배후령 힐클라이밍 대회를 보게 되어 아무생각하지 말고 신청하고, 완주해보자 마음먹고 바로 8만원을 입금시켜버렸다.
매일 게을러지고 목표가 없어지는 나에게 무언가 도전이 될거라 생각했다.
[7]
스트라이다. 1단자전거에다가 핸들유격, 프레임, 타이어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탔던 MTB와 로드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일단 지금의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이 필요했기에 약 6km(400m)의 업힐구간을 찾아 예행연습을 해보았는데 시속 8km정도의 속도에 45분정도가 소모되었다. 대회까지는 1달정도, 과연 나는 완주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완주 할 수 있을거 같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완주하고 하는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8]
지금 나에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찌뿌둥하고 일어서기 싫었던 게으름들은 이제 사치일 뿐이다.
지금 내가 필요한 최소 3가지는 대회 때까지 최대한 체력을 끌어 올려야 되고, 비슷한 난이도의 코스를 돌아봐야 되며, 자전거의 상태도 체크해봐야 대회를 완주 할 수 있다.
스트라이다로 업힐을 할 때 가장 악조건은 허리를 펴고 1자로 핸들을 잡아야 된다는 점이였다. 그렇기에 바엔드를 구입해 11자로 수정했고, 스트라이다 순정 타이어로는 가속이 나가지 않아 18인치 코작타이어로 타이어 교체를 하였다. 얇은 레이싱타이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치업이 됐기 때문에 방향전환도, 업힐도 힘들어졌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장점을 선택한거니까 후회는 없다, 그리고 이 후 도솔산, 평화의댐, 배후령등등 양구에서 갈 수 있는 악명높은 라이딩코스를 하나하나 밟아나가며 조금씩 체력을 끌어올렸다.
[9]
마침내 대회 전날,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대회날 비가 오고 강풍이 불 것을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비가 오는 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헬스장에서 연습을 하면 되지’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던 나에게 너무 안일했었던 것 같아 채찍질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현실은 수긍해야 되는 법. 이 악조건이 나에게 선조건이 될거다 생각하며 잠을 이루었다.
[10]
대회 당일 수백명의 참가자 중 미니벨로 참가자는 5명에 불과하였다. 내 목표는 완주, 조금만 더 욕심부려서 꼴등은 하지말자. 라는 생각을 하며 페달을 돌렸다.
대회는 역시 대회였다. 예행연습 때 경험해보지 못한 평지에서의 맞바람, 많은 라이더들의 방향전환에 신경쓰며 라이딩을 해야되니 체력이 2,3배는 소모되는 듯하였다.
같이 출발한 선두권은 이미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페이스를 찾게 되었고 평지에서는 적당히 쉬면서 페달을 돌리고 업힐 때에는 가속을 하여 나만의 속도에 맞추게 되어 정상2km까지 오게되었다. 정상2km가 보이자 자전거를 타면서는 도저히 올라가질 못할 바람을 맞으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갈 것인가, 바람이 불지 않는 곳까지 끌바를 할 것인가, 생각은 3초가 지나지 않아 정리가 되었다. 자전거를 탄 4명 전원이 자빠링을 하였고, 엄청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었기에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며 끌바를 2번가량 하였다.
정상이 보이는 500m지점 다행히 바람이 불지않아 마지막 스퍼트를 내었다. 200m가량 남았을 때 쥐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아 살짝 긴장하였지만 끝까지 스퍼트!
첫 번째 대회 1시간29분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11]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겨를이 없는 미시령휴게소. 바람이 살인바람이다.
약 50분정도가 지나자 2대의 버스가 오는데 사람들이 너무 무질서하였다.
여기 있는 모두가 추운건 매한가지인데, 운영위원의 말도 무시한채 버스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회의 수준과 결과는 좋을지언정 진행수준은 아직 수준이하인거 같다.
버스정차지역에 계시는 분들 순서대로 탑승하거나 또는 가장 추위에 약한 연장자와 여성분,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모습이 연출되었다면 어땠을까.
[12]
다치지 않고 완주를 하는 것이 목표였던 나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미니벨로 3위 수상을 받게 된 것이다. 첫 대회에 생각지도 못한 수상은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임이라 생각하고 이제는 자전거를 내 인생의 나침판으로 세워본다.
나는 선척적인 조건도 가지고 있지않고 운동을 잘하는 체형도 아니다.
하지만 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과 충분한 연습량이 성공시켰다고 생각한다.
가장 악조건으로 꽤나 어려운(?) 대회를 완주했었던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지금의 나의 조건이 어려울지라도 이 어려운 사회에서 묵묵히 헤쳐나가려해본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 현재상황은 어떤지, 해야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황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가 받았던 수상처럼 나에게 뿌듯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1]
자전거를 처음 만났을 때는 6살쯔음이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유치원이 1km정도 거리였는데 부모님은 내가 유치원 가는 것을 챙겨주실 수 없었고, 유치원 버스도 나 하나를 태우러 험하고 더러워지는 외진 곳을 들어오기 꺼려했다. 그렇게 나는 유치원 때부터 자전거로 유치원을 왔다 갔다 하였다.
[2]
12년간 학교에서도 자전거는 한 몸이었다.
1,2년에 한 번의.. 잦은 이사 속에서 나는 친구들보다 자전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되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추억들은 대부분 자전거와 함께였다.
[3]
자전거와 젊은 내 체력 단 두 가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나는 머리가 커갈수록 더 빨라지기를 원했고, 더 넓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빠른 시간에 완주를 한다고 한들, 젊은 나의 마음은 공허하였다.
무엇이 충족되지 못해서일까, 국내로는, 이 정도 속도로는 만족하지 못 하는 걸까,
나만의 정답은 적절한 여유였다. 앞에 보이는 라이더, 빠르게 달리는 차 속에 차선 하나를 떡 하니 잡아 라이딩을 하고 신호를 내 방식대로 가로지르는 내 모습은
마치 어른들이 잘나가는 외제차로도 안전하게 6,70km로 달리고 있는데,
나는 국산 경차로 무모하게 110,120km로 주위에 있는 차도 보는 사람도 위협하고 있는 듯.
패기넘치고 도전적인 젊음이보다 무모하고 위험한 실속이 적은 시간들이었었다.
[4]
이렇게 무모한 내가 다행히도 아직 무사고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사고가 나보지 못한 겁 없는 젊음이 과격함을 불러 한 번의 큰 사고로 이어질 수 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헬멧과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장비들을 구입하게 되었다. 예전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장비가 많아져 조금은 귀찮아졌지만 잠시 보는 라이더들과 교감하며 주변을 보게 되었다.
주변을 보면서 한 번도 남을 인정하지 못했던 내가 느낀 점은 베테랑들에 대한 존경이였다.
예전의 내가 10이라는 속도로 달리며 주변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면
베테랑들은 7이라는 속도를 달리면서 주변까지 다 즐기고 왔다.
나는 주변을 즐기며 자전거를 타보니 3,4정도의 속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최고다 생각했던 예전의 나는 숙달된 조교 앞에 겁없이 방아쇠만 당길 줄 아는 고작 훈련병이었을 뿐이었다.
[5]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나는 로드, MTB를 타며 방방곳곳을 돌아다녔고, 이번에는 미니벨로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중 때마침 눈에 들어온 미니벨로는 스트라이다,
스트라이다가 나온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관심이 없어서인지 보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지난 3월에 입문하게 되었다. 마치 이전과의 자전거와는 다른 느낌과 투박한 느낌, 마치 예전 중학생때 동네자전거로 5km가량을 업힐하며 등교했었던 내 모습이 생각났었다. 그 때에는 정말 열심히 달렸는데.. 지금은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6]
직장이 있는 곳이 경사가 심한 곳(10도가량)이라 3km가량을 스트라이다로 업힐을 해보았는데, 체력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문제는 내 정신상태가 이제는 더 이상 못 해. 여기까지야. 라는 생각이 나를 자극시켰고, 스트라이다 카페에 있는 미시령, 배후령 힐클라이밍 대회를 보게 되어 아무생각하지 말고 신청하고, 완주해보자 마음먹고 바로 8만원을 입금시켜버렸다.
매일 게을러지고 목표가 없어지는 나에게 무언가 도전이 될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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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다. 1단자전거에다가 핸들유격, 프레임, 타이어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탔던 MTB와 로드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일단 지금의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이 필요했기에 약 6km(400m)의 업힐구간을 찾아 예행연습을 해보았는데 시속 8km정도의 속도에 45분정도가 소모되었다. 대회까지는 1달정도, 과연 나는 완주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완주 할 수 있을거 같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완주하고 하는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8]
지금 나에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찌뿌둥하고 일어서기 싫었던 게으름들은 이제 사치일 뿐이다.
지금 내가 필요한 최소 3가지는 대회 때까지 최대한 체력을 끌어 올려야 되고, 비슷한 난이도의 코스를 돌아봐야 되며, 자전거의 상태도 체크해봐야 대회를 완주 할 수 있다.
스트라이다로 업힐을 할 때 가장 악조건은 허리를 펴고 1자로 핸들을 잡아야 된다는 점이였다. 그렇기에 바엔드를 구입해 11자로 수정했고, 스트라이다 순정 타이어로는 가속이 나가지 않아 18인치 코작타이어로 타이어 교체를 하였다. 얇은 레이싱타이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치업이 됐기 때문에 방향전환도, 업힐도 힘들어졌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장점을 선택한거니까 후회는 없다, 그리고 이 후 도솔산, 평화의댐, 배후령등등 양구에서 갈 수 있는 악명높은 라이딩코스를 하나하나 밟아나가며 조금씩 체력을 끌어올렸다.
[9]
마침내 대회 전날,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대회날 비가 오고 강풍이 불 것을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비가 오는 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헬스장에서 연습을 하면 되지’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던 나에게 너무 안일했었던 것 같아 채찍질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현실은 수긍해야 되는 법. 이 악조건이 나에게 선조건이 될거다 생각하며 잠을 이루었다.
[10]
대회 당일 수백명의 참가자 중 미니벨로 참가자는 5명에 불과하였다. 내 목표는 완주, 조금만 더 욕심부려서 꼴등은 하지말자. 라는 생각을 하며 페달을 돌렸다.
대회는 역시 대회였다. 예행연습 때 경험해보지 못한 평지에서의 맞바람, 많은 라이더들의 방향전환에 신경쓰며 라이딩을 해야되니 체력이 2,3배는 소모되는 듯하였다.
같이 출발한 선두권은 이미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페이스를 찾게 되었고 평지에서는 적당히 쉬면서 페달을 돌리고 업힐 때에는 가속을 하여 나만의 속도에 맞추게 되어 정상2km까지 오게되었다. 정상2km가 보이자 자전거를 타면서는 도저히 올라가질 못할 바람을 맞으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갈 것인가, 바람이 불지 않는 곳까지 끌바를 할 것인가, 생각은 3초가 지나지 않아 정리가 되었다. 자전거를 탄 4명 전원이 자빠링을 하였고, 엄청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었기에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며 끌바를 2번가량 하였다.
정상이 보이는 500m지점 다행히 바람이 불지않아 마지막 스퍼트를 내었다. 200m가량 남았을 때 쥐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아 살짝 긴장하였지만 끝까지 스퍼트!
첫 번째 대회 1시간29분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11]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겨를이 없는 미시령휴게소. 바람이 살인바람이다.
약 50분정도가 지나자 2대의 버스가 오는데 사람들이 너무 무질서하였다.
여기 있는 모두가 추운건 매한가지인데, 운영위원의 말도 무시한채 버스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회의 수준과 결과는 좋을지언정 진행수준은 아직 수준이하인거 같다.
버스정차지역에 계시는 분들 순서대로 탑승하거나 또는 가장 추위에 약한 연장자와 여성분,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모습이 연출되었다면 어땠을까.
[12]
다치지 않고 완주를 하는 것이 목표였던 나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미니벨로 3위 수상을 받게 된 것이다. 첫 대회에 생각지도 못한 수상은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임이라 생각하고 이제는 자전거를 내 인생의 나침판으로 세워본다.
나는 선척적인 조건도 가지고 있지않고 운동을 잘하는 체형도 아니다.
하지만 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과 충분한 연습량이 성공시켰다고 생각한다.
가장 악조건으로 꽤나 어려운(?) 대회를 완주했었던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지금의 나의 조건이 어려울지라도 이 어려운 사회에서 묵묵히 헤쳐나가려해본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 현재상황은 어떤지, 해야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황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가 받았던 수상처럼 나에게 뿌듯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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